한국 재난영화의 스케일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는 타워는 초고층 빌딩에서 발생한 대형 화재를 정면으로 다룬 작품입니다. 감독은 김지훈, 주연은 설경구·손예진·김상경으로 각 인물의 직업성과 책임을 중심에 놓고 사람을 구하는 영화의 윤리를 끝까지 밀어붙입니다. 배경은 서울 한복판의 초호화 주거·상업 복합 타워로 크리스마스 이브에 진행된 축하 이벤트 중 헬기 퍼포먼스가 예기치 못한 사고로 이어지면서 연쇄 화재가 발생합니다. 영화는 경로수직 샤프트·환기 덕트·스카이브리지 등의 불길의 확산을 공간적으로 이해시키고 구조의 우선순위, 현장 판단, 안전 규정과 비용 절감 사이의 균열까지 차근히 드러냅니다. 컴퓨터 그래픽과 대형 세트, 실제 화염 특수효과를 절충해 만든 재난 현장은 한국 상업영화가 구현할 수 있는 물리적 임계치를 실감나게 보여 주며 무엇보다도 재난을 배경 삼아 영웅주의로 치닫기보다 평범한 사람들의 선택과 연대를 전면에 세운 점이 오래 남습니다.
소재 - 초고층 화재와 도시의 취약성 그리고 구조의 윤리
타워의 핵심 소재는 수직 도시의 취약성입니다. 영화는 고층 빌딩의 화재가 왜 평면적 화재와 전혀 다른 양상으로 번지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합니다. 스프링클러·펌프·수조 등 소방 설비의 체계, 각 층을 연결하는 환기 덕트·전기 샤프트가 굴뚝 효과를 일으키는 방식, 방화문과 피난계단의 유지관리 여부가 생사를 가르는 순간들을 사건으로 체험하게 됩니다. 크리스마스 이브 쇼를 위해 동원된 헬리콥터 퍼포먼스가 강풍과 난류를 만나 외벽과 충돌하고 유리 커튼월을 통해 불길이 안쪽으로 빨려 들어오면서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됩니다.
영화는 왜 이런 선택이 위험했는가를 단편적 비난이 아닌 시스템 관점에서 보여 줍니다. 건물 운영 측의 비용 절감과 이벤트 과잉이 어떻게 안전 여유분을 갉아먹었는지 그리고 위기 때 누가 책임을 져야 하는지까지 사실적으로 그리고 있습니다. 동시에 구조의 윤리도 분명합니다. 소방대는 한정된 장비·시간·산소를 어디에 우선 배분할지 끊임없이 판단해야 하고 빌딩 관리팀은 피난 동선을 정리하며 허위·과장 방송을 피하려 애씁니다. 이 지점에서 타워는 재난을 스펙터클로만 소비하지 않습니다. 초고층 화재가 만드는 물리적 지옥을 체감하게 하되 그 공간을 통과하는 개인들의 두려움·책임·용기를 균형 있게 배치하여 도심의 화려함 아래 잠재한 리스크를 성찰하게 만듭니다. 결과적으로 이 영화의 소재는 단순한 불이 아니라 도시 시스템과 인간의 판단입니다.
추천 이유 - 스펙터클과 사람 사이의 균형, 한국형 재난영화의 분기점
추천의 첫째 이유는 균형 감각입니다. 타워는 대형 세트와 CG로 구현한 미장센, 파편·연기·열기의 물성, 수평·수직 이동을 동시에 활용한 동선 설계 등 재난 스펙터클의 쾌감이 분명합니다. 하지만 카메라는 언제나 사람의 얼굴로 돌아옵니다. 구조 현장 지휘관의 고독, 건물 운영 책임자의 판단 부담, 가족을 먼저 찾고 싶은 마음과 직무 사이에서 갈라지는 균열을 드러내며 관객이 특정 영웅만이 아닌 여러 선택에 감정이입하도록 만듭니다.
둘째 이유는 공간의 명료함입니다. 많은 재난물이 혼란을 위해 공간을 일부러 흐리지만 이 영화는 어느 층, 어느 동, 어느 브리지가 위험한지를 비교적 분명히 짚어 줍니다. 덕분에 관객은 구조·피난의 단계별 선택을 함께 계산하게 되고 긴장감이 이유 있는 형태로 축적됩니다.
셋째는 배우들의 설득력입니다. 설경구는 소방대장의 체력·담력·판단을 신파 없이 구현하고 손예진·김상경은 고층 복합빌딩 운영과 관리의 현실적 얼굴을 보여 줍니다.
넷째는 한국형 재난영화의 분기점이라는 의의입니다. 타워는 당시 국내 기술력과 제작 역량을 총동원해 글로벌 흥행 공식을 한국적 공간·정서와 접목했고 이후 재난 장르의 제작 문법과 관객 기대치를 끌어올리는 기점이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작품은 안전 문화에 대한 대화거리를 남깁니다. 지금의 도시에서 무엇이 과잉이고 무엇이 여유인지, 이벤트·마케팅·관리·규정 사이의 균형을 어떻게 잡아야 하는지, 크레딧이 끝난 뒤에도 생각할 거리를 조용히 던집니다. 그래서 단순한 볼거리 이상으로 추천할 가치가 충분합니다.
기억에 남는 장면 - 헬기 충돌, 스카이브리지 붕괴 그리고 한 사람의 선택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장면은 외벽 유리 커튼월을 가르며 돌진하는 헬리콥터입니다. 축하 퍼포먼스가 순식간에 재앙으로 전환되는 순간 프로펠러 바람이 불씨를 흩뿌리고 로비의 거대한 트리와 장식물들이 산소 공급로가 되어 화염을 증폭시키는 카타스트로피의 논리가 압도적으로 제시됩니다. 이어지는 스카이브리지 붕괴 시퀀스는 영화적 장치가 정점을 찍는 구간입니다. 유리 바닥 아래로 보이는 불바다와 한쪽이 먼저 무너져 내리며 발생하는 토크 그리고 반대편에 매달린 사람들의 체중이 시간차를 만들고 구조대가 로프와 하네스를 걸어가며 누구를 먼저 끌어올릴지 결정해야 하는 윤리적 긴장이 겹칩니다. 계단실에서의 연기 역류와 무릎 높이로 차오르는 뜨거운 공기의 묘사, 방화문이 닫히는 1초의 늦음이 만드는 결과 등 작은 선택의 결과가 얼마나 큰지 시각적으로 설득이 됩니다. 클라이맥스에서 특히 오래 남는 것은 한 소방관의 머무르기입니다. 전체의 불길을 꺼트리기 위해 물탱크·밸브·배수의 타이밍을 조절하고 누군가는 그 자리에 남아야만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얼굴로 그 표정과 호흡은 과장 없는 영웅담의 품격으로 남습니다.
결말부의 빗속, 살아남은 이들이 서로를 부둥켜안는 장면은 이 영화가 결국 건물의 이야기였던 동시에 사람의 이야기였다는 걸 다시 확인시킵니다. 스펙터클이 큰 영화일수록 앵글 끝에 남는 잔상은 표정이라는 사실을 타워는 정확히 증명합니다.
타워는 초고층 화재라는 냉정한 재난 공식을 스펙터클과 윤리, 사람과 시스템의 균형으로 풀어낸 작품입니다. 재감상하실 때는 공간의 논리와 선택의 이유를 따라가 보시길 권합니다. 긴장감이 배가되고 영화가 남긴 질문이 더 또렷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