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개봉한 영화 암살은 단순히 일제강점기 배경의 액션 영화라고 단정할 수 없는 깊이를 지닌 작품입니다. 1930년대 식민지 조선과 만주를 배경으로 친일파와 일본군 고위 인사를 암살하려는 독립운동가들의 치열한 삶을 그려낸 이 영화는 무려 1,270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성과 작품성을 모두 입증했습니다. 그러나 이 영화가 단순한 블록버스터로 소비되지 않고 오랫동안 회자되는 이유는 한국 근현대사의 민감한 지점을 감각적 서사로 풀어내면서도 관객 각자에게 질문을 던졌기 때문입니다. "과거의 정의는 어떻게 기록되어야 하는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는 어떤 시선으로 역사를 바라봐야 하는가" 같은 고민을 이끌어냅니다. 이 글에서는 암살의 역사적 배경, 천만 관객을 끌어당긴 힘, 관람 시 주목할 시선, 줄거리의 흐름까지 통합적으로 정리하고 이 영화가 우리 사회에 남긴 의미를 되짚어보겠습니다.
영화 속 역사 - 일제강점기의 모순과 저항
암살의 시간적 배경은 1933년 경성과 만주입니다. 영화가 묘사하는 이 시기는 일본이 조선을 군사적·경제적 병참기지로 삼아 지배를 강화하던 때로 조선인들은 일제의 수탈과 차별 속에서 극도의 결핍을 견디며 살아가야 했습니다. 겉으로는 화려한 도시 문명이 들어선 듯 보였던 경성은 사실상 조선인과 일본인 사이의 신분과 권력의 격차가 극명하게 드러나는 장소였습니다. 영화는 이러한 사회 구조의 이면을 비교적 섬세하게 담아냅니다.
가장 주목할 만한 점은 암살이 완전한 허구의 이야기로 구성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영화 속 저격수 안옥윤의 캐릭터는 실존했던 여성 독립운동가 남자현, 박차정 등에서 영감을 받아 창조되었으며 일본 육군 대장을 암살하려 했던 1932년 윤봉길 의사의 상하이 의거나 이후 연쇄적 암살 시도 등도 영화의 플롯과 긴밀하게 맞닿아 있습니다. 또한 조선 내에서 조직적인 무장 투쟁과 친일파 척결을 시도하던 세력들도 실존했고 이러한 맥락에서 강인국 같은 친일 인물 설정은 허구라기보다 상징에 가깝습니다.
더불어 영화는 단지 일본 대 조선의 대결 구도를 넘어 독립운동 진영 내부의 이념과 전략 차이도 비춰줍니다. 실제로 독립운동 내부에는 외교 독립론, 무장 독립론, 사회주의 계열의 독립노선 등 다양한 흐름이 존재했고 이는 종종 갈등으로 이어졌습니다. 영화 속 밀정 염석진의 배신은 단순한 개인의 악행이라기보다 당시 내부에서 일어났던 회유, 협박, 변절 등 복합적인 현실을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장치입니다.
이처럼 암살은 역사적 디테일을 풍부하게 활용해 스토리를 구성하면서도 관객이 당대의 복잡한 맥락을 이해할 수 있도록 영화적 장치를 잘 활용한 작품입니다. 특히 안옥윤의 여성 서사와 함께 독립운동이 남성 중심으로만 그려졌던 기존 역사물과 차별화되는 시도를 했다는 점은 의미가 큽니다.
천만 영화를 만든 진짜 원동력
암살이 천만 영화를 달성한 데에는 여러 가지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했습니다. 하지만 표면적인 흥행 요소 이상으로 이 영화가 갖고 있던 사회적 타이밍과 시대적 정서의 공감이 더 큰 역할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개봉 당시가 광복 70주년과 맞물려 있었던 시기라는 점이 중요합니다. 사회 전반적으로 해방의 의미와 친일 잔재 청산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되던 가운데 암살은 영화 속에서 그 미완의 과제를 상상력으로라도 완결 지어 줌으로써 관객에게 대리적 해소감을 안겨주었습니다. 현실에서 실현되지 않은 정의가 스크린 안에서 이뤄지는 순간 관객은 통쾌함과 동시에 뭉클한 감정을 경험하게 됩니다.
또한 여성 독립운동가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점은 젊은 관객층의 지지를 이끌어냈습니다. 당시만 해도 여성 독립운동가에 대한 대중적 인식은 거의 없다시피 했고 역사적 서사 안에서도 주변인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안옥윤이라는 캐릭터는 여성이기 때문에 약하다는 통념을 깨뜨리고 총을 들고 주체적으로 싸우는 인물로 재탄생합니다. 이는 단순히 시대극의 한 장면이 아니라 현재를 살아가는 여성 관객에게도 또 다른 감정의 통로가 되었을 것입니다.
무엇보다 최동훈 감독의 연출력과 배우들의 연기는 이 영화의 서사를 보다 깊고 몰입감 있게 만들었습니다. 전지현, 하정우, 이정재 모두 기존 작품에서 보여주지 않았던 모습을 선보이며 입체적인 캐릭터를 완성했고 미술, 의상, 배경음악, 편집까지 전반적인 영화적 완성도가 높았습니다.
암살은 역사도 재미있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작품입니다. 실제 사건과 상상력을 교차시키며 흥미로운 스토리텔링을 구성했고 그것이 단순히 지식 전달이나 교훈이 아닌 경험으로 전환되는 순간 영화는 단순한 콘텐츠가 아닌 기억으로 남게 됩니다.
영화를 바라보는 관점
암살은 액션과 서스펜스를 갖춘 오락 영화이면서도 동시에 우리 사회의 민감한 역사적 맥락을 건드리는 작품입니다. 그렇기에 이 영화를 단순히 재미있는 시대극으로만 소비하는 것은 아쉬운 일입니다. 이 영화는 우리가 어떤 시선으로 역사를 보고 현재를 살아가야 할지를 묻고 있습니다.
첫째, 관객은 이 영화를 통해 역사는 반복되지 않기 위해 기억되어야 한다는 명제를 다시금 떠올릴 수 있습니다. 영화에서 염석진은 독립운동가로 위장해 살아남아 반민특위 재판에서도 처벌을 피하지만 마지막에 안옥윤에 의해 처단됩니다. 이 장면은 단지 통쾌한 결말 이상의 의미를 지닙니다. 그것은 아직 끝나지 않은 역사, 즉 친일 청산이라는 사회적 과제를 우리 각자의 마음속에 다시 불러일으키는 장치입니다.
둘째, 인물의 선택에 주목해보아야 합니다. 안옥윤은 원래 자신의 정체도 과거도 모르고 살아가던 인물이었습니다. 그러나 상황이 그녀를 싸움터로 이끌었고 그는 결국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입니다. 반대로 염석진은 개인의 안위를 위해 동료를 팔고 일제에 협력하는 길을 선택합니다. 두 인물 모두 극단적인 상황 속에서 선택을 해야 했고 그 선택은 결과적으로 삶의 윤리를 결정짓습니다. 관객은 이 과정을 통해 "나는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를 성찰하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암살은 시대의 모순을 극복하려는 인간의 의지를 다룬 영화입니다. 경성의 화려한 거리를 배경으로 가난과 분노, 정의와 절망이 교차합니다. 바로 이 모순된 사회 속에서 한 사람의 결단이 역사를 바꿀 수 있다는 메시지는 지금의 우리에게도 분명히 유효한 질문을 던지고 있는 셈입니다.
암살은 역사 속 이름 없는 사람들의 삶을 이야기로 풀어낸 영화입니다. 단순히 액션이 통쾌해서 혹은 멋진 배우들이 출연해서 흥행한 영화가 아닙니다. 그 중심에는 지워지지 않은 역사와 끝나지 않은 질문이 존재합니다. 우리는 이 영화를 통해 과거를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마주할 것인가를 고민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고민이야말로 암살이 천만 영화 그 이상의 가치를 가지는 진짜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