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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줄거리, 연기력, 감상평)

by 영화 관람객 2025. 7. 20.

영화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포스터

 

 

2020년 8월 개봉한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는 단순한 액션 영화로 분류되기엔 감정의 결이 매우 깊은 작품입니다. 홍원찬 감독의 두 번째 장편 연출작으로 이정재와 황정민이라는 걸출한 배우들의 뜨거운 재회로도 많은 기대를 모은 영화입니다. 이 작품은 전형적인 느와르의 문법 위에 가족이라는 주제를 끌어올려 감정적 깊이를 더했으며 한국 액션 영화에서 드물게 시각미와 정서미를 동시에 만족시키는 영화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이 영화는 그간 한국 액션 느와르 장르에서 보기 힘들었던 잔혹함 속의 감정선을 유려하게 펼쳐냅니다. 황정민이 연기한 인남은 과거 청부살인자로 살아온 남자이며 자신의 과거가 결국 사랑했던 여인의 죽음으로 이어졌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마지막 남은 가족인 딸을 구하기 위해 태국으로 향하게 됩니다. 한편 이정재가 연기한 레이는 인남에게 동생을 잃은 복수귀로 그를 쫓아 끝까지 파멸을 고하는 괴물로 묘사됩니다.

 

줄거리 - 단순한 복수극이 아닌 감정 중심의 추격극

영화는 매우 간단한 줄거리로 시작합니다. 인남은 마지막 청부살인을 마치고 은퇴를 준비하던 중 과거의 연인이 사망했다는 소식을 접합니다. 문제는 그녀의 죽음 뒤에 인남이 알지 못했던 딸 유민이 존재했다는 사실입니다. 인남은 아이의 생사도 모른 채 태국으로 향하게 되고 그곳에서 아동 납치범과의 사투를 벌입니다.

그러나 영화의 구조는 단순한 인질 구출이나 액션극에 머물지 않습니다. 인남이 처한 상황은 물리적 위기보다도 훨씬 복잡합니다. 한때 타인의 생명을 아무렇지 않게 빼앗았던 그가 이제는 누군가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걸고 싸우는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이 과정은 단순한 서사의 전환이 아닌 인남이라는 인물의 도덕적 회복과 심리적 구원을 상징합니다.

동시에 레이의 존재는 이 영화의 비극성을 강화하는 장치입니다. 레이는 인남에게 동생을 잃고, 이제 그의 삶 전체를 파괴하고자 하는 복수의 화신입니다. 그러나 단순한 악역이라기보다는 자신의 분노를 제어하지 못하는 또 다른 피해자에 가깝습니다. 이정재는 레이를 중성적이고 사이코패스적인 이미지로 형상화해 이 인물의 무의미한 파괴 욕망을 극대화합니다. 그는 감정이 배제된 복수자라기보다는 그 감정이 뒤틀려 폭력만 남은 존재로 표현됩니다.

이처럼 영화는 인남과 레이라는 두 인물을 통해 죄와 죗값 그리고 사랑과 속죄라는 테마를 병렬적으로 배치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장면까지도 어느 한쪽의 완벽한 승리나 구원은 없으며 영화는 이 갈등과 희생이 끝내 무엇을 의미했는가에 대한 질문을 관객에게 남깁니다.

 

배우들의 연기력 - 완전히 새로운 얼굴을 꺼내든 두 배우

황정민과 이정재는 한국 영화계에서 이미 연기력으로는 정평이 난 배우들입니다. 하지만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에서는 이들이 스스로도 낯설 정도로 새로운 모습을 보여줍니다.

황정민은 극도의 절제를 통해 감정을 표현합니다. 대부분의 장면에서 그는 말을 아끼며 표정과 눈빛만으로 상황을 설명하고 액션 신에서도 요란한 퍼포먼스보다는 현실적이고 육체적으로 고통스러운 장면을 선택합니다. 그가 딸을 바라보는 장면은 단 한 마디 대사 없이도 관객에게 깊은 감정을 전달할 만큼 강력합니다. 이전 작품들에서는 격정적인 감정을 터뜨렸던 배우가 이번에는 모든 것을 삼키고 체화한 연기를 보여주며 배우로서의 깊이를 다시금 증명합니다.

반면 이정재는 이 영화에서 전무후무한 캐릭터로 변신합니다. 레이는 중성적인 외모와 스타일, 사이코패스적 성격을 지닌 인물로 이정재는 헤어스타일, 보이스 톤, 몸짓 하나까지도 완전히 변주하여 시선을 압도합니다. 레이는 단순한 빌런이 아닌 존재만으로도 위협이 되는 에너지입니다. 그가 화면에 등장하는 순간 관객은 극도의 불안감과 긴장을 느끼게 되며 이는 단순히 액션의 재미를 넘어서 영화 전반의 감정선을 쥐고 흔드는 효과로 작용합니다.

조연들의 활약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박정민이 연기한 유이는 인남과 함께 태국을 오가는 조력자이자 무거운 영화 속에서 유일하게 사람 냄새나는 인물로 기능합니다. 그의 존재는 단순한 장치가 아니라 인남이라는 인물이 마지막까지 인간성을 잃지 않게 하는 키포인트였습니다. 또한 최희서가 연기한 영주는 짧은 등장에도 불구하고 모성애와 절망 그리고 분노를 동시에 느끼게 하는 입체적인 인물로 표현됩니다.

 

감상평 – 구원은 가능했는가 아니면 또 다른 지옥이었는가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는 영화를 보는 내내 관객의 심장을 조여옵니다. 액션과 감정이 교차하며 긴장을 유지하지만 그 중심엔 결국 구원이라는 주제가 있습니다. 인남은 딸을 구하기 위해 자신을 파괴하고 레이는 동생의 복수를 위해 인남을 파괴하려 합니다. 하지만 그 과정은 결국 모두에게 상처만을 남깁니다.

영화는 인남의 선택을 영웅적으로 묘사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는 삶과 죽음 사이에서 끊임없이 흔들리는 인간일 뿐이며 그의 마지막 결단조차도 완벽한 승리로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그 안에 담긴 고통과 상실 그리고 후회의 무게 때문일 것입니다.

특히 이 영화가 탁월한 점은 총격과 칼부림 뒤에도 감정의 여운을 남긴다는 것입니다. 많은 액션 영화가 폭력의 쾌감으로 끝맺는 반면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는 폭력이 끝난 후의 고요함, 상실감 그리고 외로움까지도 담아냅니다.

이 영화를 본 후 오랫동안 머릿속에 남는 장면은 화려한 총격전이 아니라 인남이 딸을 껴안고 끝없이 눈물을 삼키는 모습이었습니다. 그 장면은 영화 전체의 서사를 함축하는 상징으로 “과연 그가 딸을 구하며 자신도 구원받았는가?”라는 질문을 남기며 깊은 울림을 줍니다.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는 분명히 하드보일드 액션 누아르 영화입니다. 하지만 그 안에 담긴 감정의 선은 굉장히 섬세하며 배우들의 연기력, 시각적 연출, 감정선 모두 완성도 높게 어우러진 작품입니다. 이 영화는 단지 누군가를 처단하는 이야기로 끝나지 않습니다. 구원의 기회를 잃지 않으려는 한 인간의 처절한 몸부림이자 복수를 가장한 외로움의 분출이며 결국에는 사랑을 말하는 영화입니다. 마지막까지 가족을 위해, 누군가를 위해, 인간성을 잃지 않으려는 인물의 고투는 영화가 끝난 뒤에도 오랫동안 마음속에 남아 있습니다. 폭력적인 장르 속에서 사랑과 책임을 말하는 이 작품은 한국 액션 영화의 스펙트럼을 넓혔을 뿐 아니라 관객에게 깊은 감정의 여운과 묵직한 질문을 던지는 수작으로 기억될 것입니다.